식당에서 점심을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어색했던 침묵을 가르고 건너편에 앉아있던 모 부문장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수석님, 민원이 접수됐어요.”
“…네? 민원이요?”
“네, 직원들이 수석님 전화 통화 소리가 좀 시끄럽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나는 ‘혁신’을 구상하는 미션을 받고, 만 5년 만에 옛 회사인 이곳으로 돌아온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때였다. 밥상머리에서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 법인데, 쩝… 직장인들의 팍팍한 일상 중에서 점심은 그나마 행복감이 충전되는 순간 아닌가. 점심상을 기다리면서 듣기에 적절한 얘기가 아니었다. 섭섭함이나 민망함 같은 건 둘째치고, 출출한 참에 쓰고 질긴 채소들을 에피타이저를 받은 거랑 비슷한 상황으로 영 편치 않았다.

아무튼 그 후로 나는,
여전히 씩씩하게 통화를 했다. 헿 (그래도 톤 조절은 좀 했다는 ^^;)

아이포유웍스 사무실 전경

우리 회사는 2010년에 설립되었다. 당시를 돌아보니 떠오르는 장면들은 어제 일처럼 가까운데, 숫자로 돌이켜보니 어언 10년이 훌쩍 지난 일들이 되버렸다. 그때 나는 안정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춘 전통 있는 홍보회사에서 말끔한 선후배 동료들과 일하며 소위 꿀 빨고 있었던 시기였다. 어느 날 지금 회사의 사장님(그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였음)이 차나 한 잔 하자해서 만나게 되었다. 잠깐 짚어보는 얘긴데, 문제는 ‘차나 한잔’이 항상 ‘차나…’는 아니다. 그래서 옛부터 누군가와 차를 마시는 시간을 특별히 여긴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우리도 차만 한잔 한 건 아니었다. 그 시간에 지금 회사의 씨가 뿌려졌으니.
어찌 저찌해서 그 다음 계절인가에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24시간 카페에서 사장님과 머리를 맞대고 떠올렸던 이름이 ‘아이포유웍스’였다. Ideas for Universe, Works 세상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만들자는 뜻을 담았다. 나는 설립 멤버로 7년차 해까지 함께 하였다.

우리는 디지털 마케팅 영역에서 웹 2.0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준비했던 편이었다. SNS와 스마트폰이 리드하는 웹 환경은 해마다 큰 변화를 만들어 냈고, 사용자 주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기존의 판을 깨어나갔다. 아이포유웍스는 그 깨진 틈들에 씨앗을 틔우고 성장해 나가는 기회를 잡았던 거다. 우리 뿐만 아니라 당시에 작지만 실력 있는 디지털 에이전시들이 꽤 등장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오랫동안 지속된 시장 구도에 균열이 생기며 혁신의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혁신, 혁신은 그런 것이다. 사전에서 말하는 대로 ‘묵은 풍속·관습·조직·방법 등을 바꾸어 아주 새롭게 하는 것’. 영어로 보면 Innovation인데, ‘안’을 뜻하는 in과 새롭다는 뜻의 nova가 결합한 것으로 안에서 부터 새롭게 한다는 의미다. 즉, 혁신은 안으로 고여있던 것을 다른 상태로 바꾸는 과정을 뜻한다. 보통 ‘개선한다’라는 단어랑도 유사하게 보기도 하는데, 실제 의미로도 전혀 다르다. ‘고쳐서 착해진다’는 뜻의 개선(改善)도 변화의 의미를 담고는 있지만, 개선은 ‘좋게 만든다’의 결과에 집중하고 혁신은 ‘새롭게 한다’는 지금의 행위를 말한다. 그리고 개선은 고친다고 해도 여전히 고치기 전과 다른 것으로 인식되지 않지만, 혁신은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인식된다는 점도 다르다.

5년 만에 다시 돌아온 회사에서 내가 맡은 임무는, 개선이 아니라 ‘혁신’이었다. 그런 작업은 보통 ‘모난 돌’의 캡이 씌워지기 딱 좋다. 그렇기에 떠들지 말아달라는 민원에 나는 꿋꿋하게 내 갈 길을 갈 수 있었고, 십생대혁의 첫 번째 미션으로 생각한 것이 ‘침묵’과 ‘엄숙주의’ 타파였다.

“왜 이렇게 회사가 조용해요? 전화 통화 소리도 없고, 도서관 같네요.”
“코로나 때 비대면 근무를 하면서 부터, 더 그랬던 거 같아요. 그리고 요즘 친구들은 바로 옆자리 동료에게도 말로 하면 될 일을 메신저로 한다니까요. 그리고 젊은 세대들이 느낀다는 콜포비아(Callphobia)도 있고… 몇 마디 나누면 쉽게 확인될 일을 수차례 이메일과 메신저로 하는 게 편한 비대면 시대인 거 같아요.”

하지만 역병은 지나갔고, 우리는 새로운 면역 체계로 다시 열린 시대를 맞고 있다. 회사라는 조직이 대면하지 않고도 일들이 돌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용케 버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과 같을 수 없는 체로, 다시 시작된 일상에 새롭게 적응하고 루틴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처럼 십년 넘은 조직들이 가지는 안주의 마음은 편하기야 하겠지만, 혁신의 과정에서는 짐이 된다.

아이포유웍스 사무실 전경

십년 넘게 생존한 대행사의 혁신 이야기, [십생대혁]은 그래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구사일생’ 같다고 한다. 맞다. 어쩌면 앞으로도 살아남을 우리가 되기 위해 꼭 해야 할 변화를 하자는 구호라고 해도 좋다. 도서관 같던 회사에 나는 ‘십생대혁’을 외치는 이상한 돌아온 탕아 같은 캐릭터가 되었지만, 혁신은 그런 피리 부는 사나이가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기존 판을 깨고 뿌린 씨앗이 싹을 틔우도록, 나만의 만트라를 왼다.

“아, 여.보.세.요!”
“정팀장님! 잠깐만요~”
“ㅋㅋㅋ 이거 정말 재밌지 않아?!”
“아, 짜증나. 여기 클라이언트 좀 이상한 거 아냐?”

되도록이면 더 생생하게, 침묵이여- 안녕~


홍유정 : 아이포유웍스 DX연구소의 대표수석으로 뉴미디어 마케팅 분야에서 20년 째 활동해온 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 2010~2017년까지 초기 설립 멤버로 함께하다, 훌쩍 제주도로 떠나 로컬 브랜드 및 로컬 문화 프로젝트 기획 하우스를 운영했다. 2022년 혁신을 위한 컨설팅을 하며 다시 아이포유웍스로 합류하여 [십생대혁]을 이끌고 있다. 현재 로컬브랜드포럼(LBF) 이사이자 지역문화 연구그룹 <클럽.모더놀로지>의 수석 연구원으로도 활동 중.